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카테고리 없음2009. 5. 25. 18:38
바보 노무현에 대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을 넘어 원색적 비난과 터져 나오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2002년 두 여중생의 촛불과 이어진 대선에서
대외관계에서의 당당한 대한민국,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뛰어 넘는 새로운 민주주의 그리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과거 정치사에 선을 긋고 깨끗한 정치를 선언한 그를…….
믿었다. 신뢰했고 기대했다.

오늘도 미완이기에 그렇겠지만, 당시 그것은 지난 한국 정치사와 경제사의 성장에 따른 '겪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국민적 합의이자 지향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그 삶의 드라마틱한 역정에서 나는 그가 다른 정치인들과 다른,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충분히 믿었었다.
또 당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역동적인 국민들의 거대한 지지와 행동이 있었다.
그래서 순탄치 않았던 개인사의 맥락과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선언, 그리고 지지 세력의 헌신 앞에서, 그는 분명히 보답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만큼 그의 부족과 실수는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반복된 사건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나는 그에게 신뢰를 철회했었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의 바보스러운 마지막 최후를 충혈된 눈으로 목도하며 그에 대해 다시금 매달리게 된다.

내 물음은 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바보 노무현'이라 불린 정치인이 왜 자실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최후를 맞이했던가이다.

그가 초개와 같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움'이지 않았을까?

그의 정치적 가치를 함께해 온 모든 동료들과의 관계
그의 역정을 함께 이겨 내온 가족과의 관계
그를 지지했던, 그리고 그를 정치적 중심으로 뭉치고자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그가 대통령으로서 연계해온 사람들과의 또한 관계
이 모든 관계에서 그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졌음을 냉철한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기사를 보며, 바보 노무현에 대한 최대의 비하는 인간 이하 전두환의 말이었다. " 꿋꿋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의 말은 여전히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관계의 진정성은 부끄러움으로부터 출발이다.

약속에 대한 불이행을 부끄러움으로
믿음에 대한 신뢰철회를 부끄러움으로
행동에 대한 진정한 비판을 부끄러움으로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한다면야 어찌 가족관계가 있을 수 있고, 나아가 정치적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바보 노무현의 마지막 양심은 도덕성이었다.

도덕성을 소중히 여겼던, 그 어느 정치인보다 그 기준에 스스로 준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그에게
그것마저 깨져나가고 있을 때, 그리고
그가 스스로 더 이상 인권과 정의와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고, 자신을 잊어 달라고 하는
부끄러움만이 강요할 수 있는 진정한 성찰, 그 성찰이 자신을 누루고 있을 때
그는 누구도 쉽게 느껴보지 못한 부끄러움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가슴 아프게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을 했다.
한 순간의 주저함 없이

나는 지금부터 바보 노무현에 대한 신뢰철회를 다시 철회할 것이다.  
그리고 철회를 넘어, 우리 정치사에 등장했던 그 어떤 정치인보다 바보 노무현의 가치를 존중하려고 한다.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과연 있을까하는 반복되는, 그것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정치 사건들을 보노라면, 그리고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바보 노무현의 죽음은 의미심장하며, 또 하나의 우리정치의 가치이다.

바보 노무현은 마지막까지 바보스럽게 우리 정치사의 새로운 가치를 몸으로 보였다.
이 마지막 그의 도전이 또 실패할 지 모른다 하더라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정치인들은 이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원히 제 마음 속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정론거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