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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09. 5. 25. 18:38
바보 노무현에 대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을 넘어 원색적 비난과 터져 나오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2002년 두 여중생의 촛불과 이어진 대선에서
대외관계에서의 당당한 대한민국,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뛰어 넘는 새로운 민주주의 그리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과거 정치사에 선을 긋고 깨끗한 정치를 선언한 그를…….
믿었다. 신뢰했고 기대했다.

오늘도 미완이기에 그렇겠지만, 당시 그것은 지난 한국 정치사와 경제사의 성장에 따른 '겪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국민적 합의이자 지향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그 삶의 드라마틱한 역정에서 나는 그가 다른 정치인들과 다른,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충분히 믿었었다.
또 당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역동적인 국민들의 거대한 지지와 행동이 있었다.
그래서 순탄치 않았던 개인사의 맥락과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선언, 그리고 지지 세력의 헌신 앞에서, 그는 분명히 보답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만큼 그의 부족과 실수는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반복된 사건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나는 그에게 신뢰를 철회했었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의 바보스러운 마지막 최후를 충혈된 눈으로 목도하며 그에 대해 다시금 매달리게 된다.

내 물음은 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바보 노무현'이라 불린 정치인이 왜 자실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최후를 맞이했던가이다.

그가 초개와 같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움'이지 않았을까?

그의 정치적 가치를 함께해 온 모든 동료들과의 관계
그의 역정을 함께 이겨 내온 가족과의 관계
그를 지지했던, 그리고 그를 정치적 중심으로 뭉치고자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그가 대통령으로서 연계해온 사람들과의 또한 관계
이 모든 관계에서 그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졌음을 냉철한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기사를 보며, 바보 노무현에 대한 최대의 비하는 인간 이하 전두환의 말이었다. " 꿋꿋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의 말은 여전히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관계의 진정성은 부끄러움으로부터 출발이다.

약속에 대한 불이행을 부끄러움으로
믿음에 대한 신뢰철회를 부끄러움으로
행동에 대한 진정한 비판을 부끄러움으로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한다면야 어찌 가족관계가 있을 수 있고, 나아가 정치적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바보 노무현의 마지막 양심은 도덕성이었다.

도덕성을 소중히 여겼던, 그 어느 정치인보다 그 기준에 스스로 준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그에게
그것마저 깨져나가고 있을 때, 그리고
그가 스스로 더 이상 인권과 정의와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고, 자신을 잊어 달라고 하는
부끄러움만이 강요할 수 있는 진정한 성찰, 그 성찰이 자신을 누루고 있을 때
그는 누구도 쉽게 느껴보지 못한 부끄러움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가슴 아프게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을 했다.
한 순간의 주저함 없이

나는 지금부터 바보 노무현에 대한 신뢰철회를 다시 철회할 것이다.  
그리고 철회를 넘어, 우리 정치사에 등장했던 그 어떤 정치인보다 바보 노무현의 가치를 존중하려고 한다.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과연 있을까하는 반복되는, 그것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정치 사건들을 보노라면, 그리고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바보 노무현의 죽음은 의미심장하며, 또 하나의 우리정치의 가치이다.

바보 노무현은 마지막까지 바보스럽게 우리 정치사의 새로운 가치를 몸으로 보였다.
이 마지막 그의 도전이 또 실패할 지 모른다 하더라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정치인들은 이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원히 제 마음 속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정론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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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일자리를2008. 12. 8. 14:27

 

지난 12월 6일 토요일 오후 4시 열린, “청년실업100만시대, 청년들 뿔났다” 퍼포먼스에 대한 어이없었던 이야기다.

청년실업을 해결하라는 청년들의 목소리와 퍼포먼스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기자회견이 시작하기 전까지 경찰 측은 협조를 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당연하다.
기자회견은 집회도 아니고 누구의 허락을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경찰 측의 협조는 우리 사회에서 일상의 하나였다.


그러나 잠시 후 경찰들의 태도가 돌연 180도로 바뀌었다.

“선진일류 경찰로의 도약을 위해 경찰이 새롭게 달라지겠습니다”라는 경찰청 대형 현수막이 실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지를 알려주듯이...


상황전개는 이러했다.

3시 50분 경, 기자회견을 준비하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경찰 병력(전경)들이 기자회견장에 난입을 하고 기자회견을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전경들과 기자회견 참가자들의 실강이가 있었으나 잠시 후 경찰들의 막무가내식 방해에도 참가자들은 해학을 발휘 했다.

그냥 전경들과 함께 같이 서서 기자회견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주변이 기자들도 얼굴에 웃음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웅성거렸다. “그냥 같이 한데, 그림 몇 장 나오겠는걸... ㅎㅎ”


퍼포먼스 Scene 1 : 기자회견장을 선점한 전경들 출처 : 연합뉴스



퍼포먼스 Scene 2 : 기자회견장의 주연과 조연, 출처 : 연합뉴스



우수운 상황이 연출되자 경찰들은 이내 태도를 바꿨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경찰은 더 이상 기자회견의 참가자로 서있기가 어색했는지 병력을 철수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철수되는 듯 하던 병력들이 다시 난입을 하고 기자회견장에 펼쳐져 있던 대형 현수막 4개를 강제로 찣고 강탈해 갔다. 그리고 퍼포먼스 대형을 망가트리면서 다시 한번 기자회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퍼포먼스 Scene 3 : 제대로 시작되는 기자회견의 모습, 출처 : 민중의소리


그 현수막에는 “청년실업100시대, 청년들은 일하고 싶다”, “경제대통령 이명박, 어디에 있니?”, “청년들의 눈높이가 문제라구요?”, “이제 청년들은 당신에 대한 신뢰를 버립니다” 등이 써 있었고, 청년들은 1,000,000이란 숫자의 대형으로 청년실업 100만시대를 상징하고 있었다. 



퍼포먼스 Scene 4 : 현수막을 찟고 빼앗는 '새롭게 바뀐(?)' 경찰의 모습, 출처 : 민중의소리



청년실업의 심각성과 이의 해소를 촉구하기 위해 한 달여 동안 준비해온 소중한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을 짓밟아 버리는 이 순간은

경제대통령을 자임한 이명박은 7%로 경제성장으로 년간 6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후보시절 대대적인 공약을 선전하였으나, 실적은 9만 7천개였을 뿐이었다.

또한 최근 12월 1일 라디오연설에서 청년실업의 해결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청년들의 눈높이를 낮추고 도전정신을 가지면 청년실업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청년들이 이에 대해 한 마디로 “얘 뭥미?”였다.

현 정부가 청년실업과 청년고용에 대해 관점도 서 있지 못할 뿐 아니라 해결책도, 실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감추는 비겁한 행동이었고, ‘새롭게 바뀐(?)’ 경찰들의 참 모습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바뀐(?)’ 경찰들은 내내 불법집회라고 우격다짐만 했다.

그럼 함 물어보자.

기자회견장에 포퍼먼스로 서있던 1,000,000이란 숫자가 집회에 해당하는가,
또 현수막 4개를 들고 있는 것이 집회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인가,
청년실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80여명의 사람이 모여있는 것이 집회라는 것인가? 말해 보라.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다시한번 보았다.


청년실업해결은 청년실업을 해결하라는 목소리를 가두는 것으로는, 분명코 말할 수 있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Posted by 정론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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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일자리를2008. 11. 14. 00:00

청년실업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국내청년실업대책’
청년실업공동기획 ⑤ 국내 청년실업대책, 다양하지만 새로울 것이 없다.

 

한국청년센터·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에서는 오는 12월 31일 종료되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을 대체할 ‘청년실업해소 및 청년고용촉진법(안)’의 제정을 위한 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은

 청원운동에 맞물려 청년실업의 사회적 해법 모색을 위해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과 공동기획한 기사이다

 

 


 
앞선 글(공동기획기사 ③)에서 해외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기반한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노력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어떤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을까?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공동기획기사 ④)에서도 보듯이 어떤 대책들이 시행되고 있는지 직접적인 정책의 수혜자들, 즉 청년들은 잘 모르고 있다.


2004년 제정된 ‘청년실업해소특별법(한시법으로 2008.12.31로 시한만료)’을 보면 제3조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대책에는 청년실업해소를 위하여 필요한 인력수급전망, 청년미취업자실태, 자금지원대책, 직업능력개발훈련대책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매년 노동부에서는 청년실업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으며, 청년실업대책 가이드북을 통해 대책들을 안내하고 있다.


국내의 청년실업대책은 ‘2008년 청년실업대책 가이드북’를 통해 시행중인 정책과 함께, 8월 29일 ‘제6차 위기관리대책회의’를 통해 발표한 이명박 정부의 청년실업대책을 살펴볼 수 있다.


8개분야 총 49개의 사업 - 다양한 ‘국내청년실업대책’, 그렇지만?


가이드 북을 통해 본 국내청년실업대책은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8개 분야 총 49개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시행중인 사업은 아래 표1과 같다.


정부에서는 청년실업의 원인을 ‘노동수요의 감소(경기변화·생산구조의 변화로 인한)’와 ‘고학력으로 인한 미스매치’ 등을 주요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표에서 보면, 그런 주요원인에 대한 근본적 해법보다는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이행하는 경로, 직장에서 직장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용이하게 하는 중심으로 대책들이 세워지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실업은 다양한 원인의 복합적 결과인 만큼 제대로 된 청년실업정책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국가차원의 전반적인 경제·교육·산업·고용정책을 하나로 묶는 통합적 정책이 수립해야 한다. 그러할 때 청년들이 실제 요구하는 장기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담아 개선해야할 ‘청년실업종합대책’


비록 완성도가 높고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나 시행 중인 정책들이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정부의 정책에서는 장기적인 대책을 지향하고 있는 사업도 있고 이미 성과를 보이는 사업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청년실업대책들을 보다 개선하고 완성시켜 나가야할 부분이 크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직장체험활성화, 단기일자리 제공 정책들의 경우, 다양한 직장체험 기회 등을 통해 직업선택과 진로설계에 도움을 주고, 경력형성 및 직업능력개발을 지원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연수기관의 관리 미흡 ▲ 전공 및 선호 분야의 불일치 ▲ 업무의 단순 사무보조직 ▲ 저임금 비정규 노동의 양산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해외취업인턴은 일부 경력형성에 도움이 되기는 하나, 2004~2005년 노동부자료를 보면 해외인턴쉽 참가 전문대학생의 취업률은 55.1%인데 반해 전문대 평균 취업률은 83%로 실제 취업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직업훈련의 경우에 직업훈련에 청년층을 참가하게 하는 유인의 부족, 직업훈련 후 취업으로의 연계 등에 대한 일부 지적도 존재하며, 고용보조금의 경우 사업주들로 하여금 보조금 수혜가 끝난 청년층을 단기 해고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제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각종의 직업진로지도 프로그램 및 취업지원 프로그램 등에 대한 기대는 많으나, 아직까지 청년층들이 일반적 고용서비스로 느끼기에는 아직 그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이명박 정부, 새로울 것이 별로 없는 ‘새로 발표된 청년고용촉진대책’


사실 2008년 청년실업대책은 이전 노무현 정부의 청년실업대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청년실업대책은 어떤 것일까?

현 정부는 8월 29일 ‘6차 위기관리대책회의’를 통해 ‘청년고용촉진대책’을 발표했다.

주요내용을 보면 임금의 50%를 지원하는 중소기원 인턴제 실시, 청년 창업의 지원, 해외취업의 확대, 현재 시행되고 있는 YES프로그램을 확대한 뉴스타트 프로젝트의 추진 등을 담고 있다.


* 뉴스타트 프로그램 : 중고교 중퇴자, 사회부적응자 등 취약청년을 대상으로 실시, 총 3단계(상담-훈련-취업집중관리)로 실시되며 참여시 30만원의 수당 지급
 


 


이전 실시되었던 대책들과 비교해서, 직장체험제가 보완된 청년인턴제, 자율적이긴 하나 대기업의 인턴제 확대, 단기복무병의 취업캠프 등을 제외하고는 규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항상 새로운 것이 능사는 아니기에 정부정책의 적극적 의지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 다만, 취업애로청년층이 줄어, 청년실업이 다소간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가 되는 것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도 많은 인턴제가 있었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단기 일자리를 양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또한 이를 위해 우량 중소기업을 발굴한다고 하는데, 중소기업을 양질의 일자리로 만들 육성정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 인프라 확충을 위해 민간위탁과 직업소개사업의 규제완화를 중장기 과제로 제출하고 있다. 과연 실적을 중심으로 평가될 민간위탁이라든가 이윤을 목표로 하는 유료직업소개사업이 ‘얼마나 취업애로층을 중심으로 사업을 벌이게 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근원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모호하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하반기에 창출 방안을 마련, 시행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요즘 경제이야기에는 정책에 대한 신뢰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실업정책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실업에 대한 공포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양질의 일자리를 기대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과 지금의 어려움을 덜어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약간의 사회안전망이 결합된 단기대책의 결합을 통해 청년층의 실업에 대한 공포감을 덜어줄 수 있다면 ‘88만원세대’란 오명을 벗어날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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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 18 3악장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3rd Movement

 


1972/02/14 이전 녹음된 미국 음반으로, 발행된지 30년이 지나 저작인접권 만료됨.

 

[작곡자 소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Vasilyevich Rachmaninov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러시아어: 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 영어: Sergei Vasilievich Rachmaninoff, 1873년 4월 1일 ~ 1943년 3월 28일)는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 피아노 연주가이자 지휘자이다.

 

□ 일대기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뒤늦게 얻게 되었지만, 그의 피아노 연주가로서의 기량은 널리 알려져 주목을 끌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했다. 전설적인 기교와 13도의 음정까지도 연주해 낼 수 있을 만큼 컸던 손 등에 힘입어,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라흐마니노프 스스로 연주한 자신의 음악이나 일반적인 레파토리 곡들의 연주는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의 레이블로 출시되었다.

 

□ 작품

그의 작품에는, 네 개의 피아노 협주곡, 세 개의 교향곡과 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세 개의 오페라,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에 기초한 성악 교향곡 《종》, 저녁기도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전주곡 올림 다 단조를 포함한 스물 네 개의 전주곡, 열 일곱 개의 연습곡, 교향적 춤곡과 많은 가곡 등이 있다. 그는 비록 명백히 쇼팽과 리스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차이콥스키와 비슷한 후기 낭만파 양식이다.[출처 : 위키백과]

 

[앨범소개]

 

□ 피아노

- 반 클라이번 Van Cliburn

 

1958년 미소(美蘇)의 냉전 시기에 소련으로 달려가 당당히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반 클라이번. 곧 국민적인 영웅이 된 그는 카네기홀에서 키릴 콘드라신과 연주회를 열면서 온 미국인의 가슴에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모든 음표를 새겼다. 23살의 정열과 패기 그리고 무한정 솟구치는 에너지와 현란한 테크닉은 가히 전율적이다.

 

 

□ 지휘자

- 프리츠 라이너 Fritz Reiner

 

□ 오케스트라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Chicago Symphony Orchestra

 

 

□ 작곡 연도

- 1900년 늦은 여름 ~ 1901년 4월

 

□ 작곡 장소

- 모스크바(Moscow)

 

□ 헌정, 계기

-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헌정됨. 1899년 신경쇠약에 걸렸다가 1900년 1월부터 4월까지 달 박사의 치료를 받은 뒤 5월에 완쾌, 이후 작곡에 전념함.

 

□ 초연 연도

- 2-3악장: 1900년 12월 2일, 전곡: 1901년 10월 27일

 

□ 초연 장소

- 모스크바(Moscow)

 

□ 초연자

- 작곡자 (피아노 독주), 질로티(Alexander Ziloti) 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악기 편성/성악가/등장인물

-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B flat, A)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tenor 2, bass 1) 3, 튜바, 팀파니, 큰북, 심벌즈, 현5부

 

□ 악장 구성

 

- 1악장 Moderato, C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맨처음 8마디의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며 점점 크레셴도됨. 제1 주제는 피아노의 아르페지오에 이어 관현악으로 제시됨. 제2 주제는 E flat장조의 선율로 제시됨. 발전부는 제1 주제가 목관 악기와 비올라로 변형되어 연주됨. 제2 주제는 클라리넷과 비올라로 진행됨. 재현부는 제1 주제가 현악기로 연주됨. 제2 주제는 현의 트레몰로 위에 호른이 진행함.

 

- 2악장 Adagio sostenuto, E장조 4/4박자, 3부 형식. 서주는 약음기를 낀 현악기와 클라리넷, 파곳, 호른으로 제시되며 이어서 피아노가 등장함. 이후 독주 플루트의 선율이 진행되며 클라리넷이 계속 선율을 이어서 연주함. 중간부는 제1부의 주제에서 파생된 주제가 피아노로 연주되며 파곳이 대비적인 선율을 같이 진행함.

 

 

- 3악장 Allegro scherzando, C장조 2/2박자, 자유로운 형식으로 론도 형식과 유사하며 2개의 주제가 변화된 형태로, 교대로 진행함. 큰북과 심벌즈는 3악장에서만 연주함. 현악기로 도입부가 시작되며 투티까지 이어짐. 이후 제1 주제는 피아노가 제시함. 제2 주제는 오보에와 비올라가 제시하며 제1 주제와 대비적인 요소임.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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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 18 2악장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2nd Movement

 

 


  1972/02/14 이전 녹음된 미국 음반으로, 발행된지 30년이 지나 저작인접권 만료됨.

 

[작곡자 소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Vasilyevich Rachmaninov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러시아어: 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 영어: Sergei Vasilievich Rachmaninoff, 1873년 4월 1일 ~ 1943년 3월 28일)는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 피아노 연주가이자 지휘자이다.

 

□ 일대기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뒤늦게 얻게 되었지만, 그의 피아노 연주가로서의 기량은 널리 알려져 주목을 끌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했다. 전설적인 기교와 13도의 음정까지도 연주해 낼 수 있을 만큼 컸던 손 등에 힘입어,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라흐마니노프 스스로 연주한 자신의 음악이나 일반적인 레파토리 곡들의 연주는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의 레이블로 출시되었다.

 

□ 작품

그의 작품에는, 네 개의 피아노 협주곡, 세 개의 교향곡과 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세 개의 오페라,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에 기초한 성악 교향곡 《종》, 저녁기도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전주곡 올림 다 단조를 포함한 스물 네 개의 전주곡, 열 일곱 개의 연습곡, 교향적 춤곡과 많은 가곡 등이 있다. 그는 비록 명백히 쇼팽과 리스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차이콥스키와 비슷한 후기 낭만파 양식이다.[출처 : 위키백과]

 

[앨범소개]

 

□ 피아노

- 반 클라이번 Van Cliburn

 

1958년 미소(美蘇)의 냉전 시기에 소련으로 달려가 당당히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반 클라이번. 곧 국민적인 영웅이 된 그는 카네기홀에서 키릴 콘드라신과 연주회를 열면서 온 미국인의 가슴에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모든 음표를 새겼다. 23살의 정열과 패기 그리고 무한정 솟구치는 에너지와 현란한 테크닉은 가히 전율적이다.

 

 

□ 지휘자

- 프리츠 라이너 Fritz Reiner

 

□ 오케스트라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Chicago Symphony Orchestra

 

□ 작곡 연도

- 1900년 늦은 여름 ~ 1901년 4월

 

□ 작곡 장소

- 모스크바(Moscow)

 

□ 헌정, 계기

-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헌정됨. 1899년 신경쇠약에 걸렸다가 1900년 1월부터 4월까지 달 박사의 치료를 받은 뒤 5월에 완쾌, 이후 작곡에 전념함.

 

□ 초연 연도

- 2-3악장: 1900년 12월 2일, 전곡: 1901년 10월 27일

 

□ 초연 장소

- 모스크바(Moscow)

 

□ 초연자

- 작곡자 (피아노 독주), 질로티(Alexander Ziloti) 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악기 편성/성악가/등장인물

-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B flat, A)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tenor 2, bass 1) 3, 튜바, 팀파니, 큰북, 심벌즈, 현5부

 

□ 악장 구성

 

- 1악장 Moderato, C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맨처음 8마디의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며 점점 크레셴도됨. 제1 주제는 피아노의 아르페지오에 이어 관현악으로 제시됨. 제2 주제는 E flat장조의 선율로 제시됨. 발전부는 제1 주제가 목관 악기와 비올라로 변형되어 연주됨. 제2 주제는 클라리넷과 비올라로 진행됨. 재현부는 제1 주제가 현악기로 연주됨. 제2 주제는 현의 트레몰로 위에 호른이 진행함.

 

- 2악장 Adagio sostenuto, E장조 4/4박자, 3부 형식. 서주는 약음기를 낀 현악기와 클라리넷, 파곳, 호른으로 제시되며 이어서 피아노가 등장함. 이후 독주 플루트의 선율이 진행되며 클라리넷이 계속 선율을 이어서 연주함. 중간부는 제1부의 주제에서 파생된 주제가 피아노로 연주되며 파곳이 대비적인 선율을 같이 진행함.

 

 

- 3악장 Allegro scherzando, C장조 2/2박자, 자유로운 형식으로 론도 형식과 유사하며 2개의 주제가 변화된 형태로, 교대로 진행함. 큰북과 심벌즈는 3악장에서만 연주함. 현악기로 도입부가 시작되며 투티까지 이어짐. 이후 제1 주제는 피아노가 제시함. 제2 주제는 오보에와 비올라가 제시하며 제1 주제와 대비적인 요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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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 18 1악장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1st Movement

 

 


 1972/02/14 이전 녹음된 미국 음반으로, 발행된지 30년이 지나 저작인접권 만료됨.

 

[작곡자 소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Vasilyevich Rachmaninov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러시아어: 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 영어: Sergei Vasilievich Rachmaninoff, 1873년 4월 1일 ~ 1943년 3월 28일)는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 피아노 연주가이자 지휘자이다.

 

□ 일대기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뒤늦게 얻게 되었지만, 그의 피아노 연주가로서의 기량은 널리 알려져 주목을 끌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했다. 전설적인 기교와 13도의 음정까지도 연주해 낼 수 있을 만큼 컸던 손 등에 힘입어,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라흐마니노프 스스로 연주한 자신의 음악이나 일반적인 레파토리 곡들의 연주는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의 레이블로 출시되었다.

 

□ 작품

그의 작품에는, 네 개의 피아노 협주곡, 세 개의 교향곡과 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세 개의 오페라,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에 기초한 성악 교향곡 《종》, 저녁기도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전주곡 올림 다 단조를 포함한 스물 네 개의 전주곡, 열 일곱 개의 연습곡, 교향적 춤곡과 많은 가곡 등이 있다. 그는 비록 명백히 쇼팽과 리스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차이콥스키와 비슷한 후기 낭만파 양식이다.[출처 : 위키백과]

 

[앨범소개]

 

□ 피아노

- 반 클라이번 Van Cliburn

 

1958년 미소(美蘇)의 냉전 시기에 소련으로 달려가 당당히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한 반 클라이번. 곧 국민적인 영웅이 된 그는 카네기홀에서 키릴 콘드라신과 연주회를 열면서 온 미국인의 가슴에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모든 음표를 새겼다. 23살의 정열과 패기 그리고 무한정 솟구치는 에너지와 현란한 테크닉은 가히 전율적이다.

 

 

□ 지휘자

- 프리츠 라이너 Fritz Reiner

 

□ 오케스트라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Chicago Symphony Orchestra

 

□ 작곡 연도

- 1900년 늦은 여름 ~ 1901년 4월

 

□ 작곡 장소

- 모스크바(Moscow)

 

□ 헌정, 계기

-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헌정됨. 1899년 신경쇠약에 걸렸다가 1900년 1월부터 4월까지 달 박사의 치료를 받은 뒤 5월에 완쾌, 이후 작곡에 전념함.

 

□ 초연 연도

- 2-3악장: 1900년 12월 2일, 전곡: 1901년 10월 27일

 

□ 초연 장소

- 모스크바(Moscow)

 

□ 초연자

- 작곡자 (피아노 독주), 질로티(Alexander Ziloti) 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악기 편성/성악가/등장인물

-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B flat, A)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tenor 2, bass 1) 3, 튜바, 팀파니, 큰북, 심벌즈, 현5부

 

□ 악장 구성

 

- 1악장 Moderato, C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맨처음 8마디의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며 점점 크레셴도됨. 제1 주제는 피아노의 아르페지오에 이어 관현악으로 제시됨. 제2 주제는 E flat장조의 선율로 제시됨. 발전부는 제1 주제가 목관 악기와 비올라로 변형되어 연주됨. 제2 주제는 클라리넷과 비올라로 진행됨. 재현부는 제1 주제가 현악기로 연주됨. 제2 주제는 현의 트레몰로 위에 호른이 진행함.

 

- 2악장 Adagio sostenuto, E장조 4/4박자, 3부 형식. 서주는 약음기를 낀 현악기와 클라리넷, 파곳, 호른으로 제시되며 이어서 피아노가 등장함. 이후 독주 플루트의 선율이 진행되며 클라리넷이 계속 선율을 이어서 연주함. 중간부는 제1부의 주제에서 파생된 주제가 피아노로 연주되며 파곳이 대비적인 선율을 같이 진행함.

 

 

- 3악장 Allegro scherzando, C장조 2/2박자, 자유로운 형식으로 론도 형식과 유사하며 2개의 주제가 변화된 형태로, 교대로 진행함. 큰북과 심벌즈는 3악장에서만 연주함. 현악기로 도입부가 시작되며 투티까지 이어짐. 이후 제1 주제는 피아노가 제시함. 제2 주제는 오보에와 비올라가 제시하며 제1 주제와 대비적인 요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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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일자리를2008. 11. 4. 00:00

대학생, 개인에 대한 지원보다 괜찮은 일자리를

청년실업공동기획 ④ 대학생 설문조사 결과

 

한국청년센터·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에서는 오는 12월 31일 종료되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을 대체할 ‘청년실업해소 및 청년고용촉진법(안)’의 제정을 위한 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은

 청원운동에 맞물려 청년실업의 사회적 해법 모색을 위해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과 공동기획한 기사이다

 

 

한국청년센터는 2007년부터 이동상담을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대학생 취업 의식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 진행한 설문조사 중간결과 중 ‘청년실업해소특별법에 대한 인지도 및 처리방향’에 관련된 문항의 결과를 통해 대학생들의 요구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조사는 2007년 5월부터 전국대학의 이동상담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12월경 마무리 되어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에 있다. 이하 기사는 현재까지 조사된 406명의 응답자에 대한 결과이다.

 

먼저, 2004년 제정된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2%가 ‘모르고 있었다’라고 응답했다. 단 6%만이 알고 있었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특별법 제정 이후 법에 대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어떤 법이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법의 수혜자인 청년층이 법 존재 자체를 대다수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법의 수혜자인 청년층이 정책이 있어도 이를 알고 이용하지 못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는 2007년에 진행된 같은 조사(문항 일부 차이)의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2007년 ‘대학생 취업 의식실태 조사’의 정부 청년실업해소 정책 개별 인지도 조사를 보면 ‘조금 안다’, ‘잘 안다’를 포함하여 50%이상의 인지도를 보이는 정책은 ‘해외취업연수,훈련,인턴제’ 와 ‘직업심리검사서비스’ 정도이다. 그 외에 정책에 대해서는 30~40% 정도의 인지도를 보였다. 이는 청년층 반 이상이 도움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어도 찾아 이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정책의 효용성 문제를 차제하고, 정책운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오는 12월 31일 시한이 마무리 되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의 향후 처리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1%는 ‘내용을 더욱 실질적으로 수정 개정연장 되어야 한다’라고 응답했으며. 현행안대로 연장 13%순으로 답했다.

이는 청년실업문제가 더 이상의 개인의 문제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면, 대학생들 역시 사회적 해법을 통한 해소 혹은 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향에 해소 대책 혹은 조력을 원하는 것일까?

 

 

청년실업해소와 관련하여 여러 단체에서 내놓고 있는 해법들 중 어떤 정책이 중요하다고 묻는 질문(3개까지 복수응답 허용)을 했다.

이 대답에 대해 응답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서비스 부문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고용개선 목적의 중소기업 지원 강화’, ‘청년의무고용제’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이는 대학생들은 청년구직자들에 대한 직접적 지원보다는 ‘괜찮은 일자리’라 이야기 되는 일자리에 확충을 더 원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이다.

 

 

현재 정부에서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의 법명을 ‘청년고용촉진특별법’으로 바꾸고 2013년까지 연장하는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이며, (사)한국청년센터에서도 ‘청년실업해소 및 청년고용촉진법(안)’ 청원운동을 진행 중이다. 과연 18대 국회에서 청년층들의 일자리 요구에 대해 어떤 사회적 해법을 담은 법안을 만들지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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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일자리를2008. 11. 4. 00:00

청년실업대책, 해외는? 그리고 우리는?

청년실업공동기획 ③ 해외사례를 통해본 청년실업해소의 가능성

 

 

한국청년센터·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에서는 오는 12월 31일 종료되는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을 대체할 ‘청년실업해소 및 청년고용촉진법(안)’의 제정을 위한 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은

 청원운동에 맞물려 청년실업의 사회적 해법 모색을 위해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과 공동기획한 기사이다

 

.

청년실업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OECD국가가 높은 청년실업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해외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이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거기서 해법 중 일부를 배워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국가의 사례가 있으나 놀라운 성과로 주목받고 있는 덴마크의 고용정책, 노동부 YES프로그램을 통해 벤치마킹한 영국의 NewDeal, 벨기에의 Rosetta Plan를 살펴보자.

 

해외도 마찬가지,

경제성장만을 강조한다고 청년실업 해소되지 않는다.

 

  국가 경제 모델의 차이는 있겠으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목소리는 대략 유사하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통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특히 청년계층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성과 실업은 전 세계적 차원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 표1. OECD 국가 실업률 비교

 

경제성장을 통해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최근 고용동향이나 경제지표을 보면 보라빛 미래만을 기대하긴 힘들 듯 하다.

경제성장률 변동이 크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수는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고용부분에 있어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세계적 경제위기는 향후 한국경제의 높은 성장을 그리기에는 주저하게 한다.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나 '높은 경제 성장률을 통한 청년실업해법'이 현실적이고 실질적 대책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비단 ‘정부를 비판하기 좋아하는 소수’의 문제만은 아닌 듯 하다.

설령, 정부 이야기대로 고성장을 하더라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식의 중소기업간의 관계는, 성장이 고용의 90%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의 고용환경을 얼마나 키워줄 수 있는지, 고용창출력이 크지 않은 IT산업 중심의 성장이 얼마나 많은 고용을 추가로 만들어 낼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저 현재의 고용계수를 중심으로 일자리질의 문제는 별도로 하고 얼마쯤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청년실업의 해법은 현시점에 없는 것인가?

 

기업의 성장과 경제의 성장만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공식만을 보고 이야기 한다면 대답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절대적 일자리 수의 문제라면 해법에 있어서 '경제성장'은 필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접근한다면 완전해소는 어렵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덜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청년실업문제는 '고용'이라는 문제에 포함되어 있는 만큼 올바른 고용정책을 통해서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는 청년실업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용의 불안정성은 잦은 이직 즉, 더 나은 직장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과정을 수시로 반복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우에 따라 노동시장에서의 이탈현상까지 생겨나게 된다.

또 여기에 덧붙여, 이를 예측한 예비 취업자들은 첫 노동시장 진입을 ‘괜찮은 일자리’로 하기위해 노동시장에 바로 진입하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취업준비를 하게 된다. 이 인원이 올해 60만을 넘어서고 있다.

 

놀라운 사례 하나, 덴마크의 고용지표

 

▲표2. 2007년 덴마크와 대한민국 고용지표 비교

 

 

우리와 덴마크(물론 덴마크는 인구600만의 국민소득이 4만불에 육박하는 강소국이란 점에서 단순 비교는 어려우나 고용정책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의 지표를 비교해 본다면 고용률에서 10%의 차이는 그만큼 국민다수가 노동시장으로 진입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세계적으로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서고 있거나 심지어는 20%를 넘어서고 있는 OECD국가들과는 다르게 2.0%라는 경의로운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선진국들은 덴마크의 사례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덴마크 노동시장의 성공은 세 가지 요인의 결합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① 노동시장의 높은 역동성(높은 노동의 유연성)과 ②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 ③ 여기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결합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이다.

덴마크 모델의 핵심은 해고와 신규고용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기업은 환경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게 함과 동시에, 근로자들에게는 생활급 수준의 실업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실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실업자에게 최대 4년간 해고직전 급여의 평균90%수준의 실업수당을 지급하면서도 1년후부터는 정부가 지정하는 재취업교육 및 인터뷰에 응해야 실업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다.

이처럼 덴마크 사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첫째, 바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청년실업해소에서 구조적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청년실업 정책의 고유한 영역에 해당하는 것도 사실 전반적 경제정책, 산업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NewDeal, 벨기에의 Rosetta Plan


영국의 뉴딜정책은 현재 우리 노동부가 YES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벤치마킹하여 시행중이기도 한 프로그램이다. 뉴딜정책은 원래 심각한 청년실업문제 해소를 위해 설계된 프로그램이나 현재는 거의 전 계층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청년층만을 대상으로한 프로그램을 설명하면18~24세의 청년으로 구직급여를 6개월이상 받고 있는 장기실업자, 25세 이상으로 2년이상의 실업을 경험한 장기실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다. 도입단계(Gateway), 옵션선택단계(New Deal Option), 취업단계(Work)의 3단계를 통해 구직자가 구직급여를 그냥 받는 것보다, 프로그램 참가나 근로가 항상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유인을 제공하는데 있다. 영국은 뉴딜 시행이전 15.3%의 청년실업률이 10.7%로 줄었다.

 

 

▲그림1. 영국의 뉴딜정책

 

벨기에의 Rosetta Plan은 벨기에 정부가 청년실업을 예방하기 위해 2000년 시행한 조처다. 노동자 수 50명 이상인 민간 기업 고용주들은 전체 노동자의 3%에 해당하는 수를 년실업자들로 추가 고용해야 한다. 의무를 위반한 기업에게는 청년 1명 당 매일 3천 벨기에프랑(약 8만5440원)의 벌금을 부과했고, 의무를 이행한 기업들에겐 신규 고용 1명당 사회보장 부담금을 분기당 2만 벨기에프랑(약56만9600원)을 감면해줬다.

그러나 이 정책이 단지 기업에게만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벨기에는 30세이하의 청년층에게 대기수당이라는 것을 지급하는데 이는 졸업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층에 대한 최소한의 금전적 혜택이다. 그러나 Rosetta Plan의 대상이 된 청년이 자신에게 제공된 일자리를 거부하는 경우 대기수당이 지급되지 않을 수 도 있다.

영국과 벨기에의 경우에도 사회복지시스템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결합이라는 공통성을 보인다.

 

청년실업,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출발해보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란 개념은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이 생소한 개념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이상적인 모델로 노동시장의 진입과정은 중등교육부터 올바른 노동관 정립과 직업에 대한 교육을 시작으로 해서, 자신에 적성을 파악하고, 자신에 적성에 따른 직업군에 대한 자기개발을 통해 취업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2.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하의 취업과정(초기진입)

 

물론 그림1과 같은 청년층의 노동시장 초기 진입뿐만 아니라, 조기 직업교육을 제외하고 나면 이미 노동시장에 진입해 있는 노동자들이 산업수요에 맞춰 유연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 시기에 새로운 경제잠재력을 담보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선진적 평생 교육 제도’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소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비교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노동시장정책은 소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나눠지는데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급여’ 지급 수준에 머무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직업중계(일자리연결), 학습복지체계(직업능력개발), 고용창출, 노동시장 조정정책은 물론이며 소극적 노동시장정책까지 포함한다.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주요내용인 실업급여는 과연 실업극복에 도움이 될까?

 

찬반의 의견이 존재하지만 반대의 입장인, “실업급여는 노동시장으로 재진입을 가로 막는다”는 견해를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위의 이야기는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사회복지제도가 어느 정도 갖춰진 나라에서 살고 있는 A라는 사람이 최근 실업상태에 놓였다. 그 A 실업자는 사회복지망에 의해 비정규직의 평균임금 수준 또는 80% 수준만이라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A 실업자는 사회복지제도에 의탁하여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보장은 필요한 것인데 그 효과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악순환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맞물리면 상황은 선순환으로 바뀐다.

유인책으로 실업급여 수준을 보다 높이면서 동시에 강제조항으로 그 실업급여를 수급받기 위해서는 재취업 프로그램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빠른 시기 안에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 차원의 총생산량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담보하면서도 향후 20~30년 후의 국가 경쟁력을 높여낼 수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실업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이 당장에는 국가재정의 부담이 되겠지만 결국에는 노동시장으로 빠른 재진입에 따라 세금확보와 안정적 국가 재정을 담보하는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

물론, 사회보장제도 자체가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우에 덴마크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향에서의 작은 정책들이 추진된다면 시간이 경과할 경우 ‘국가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2009년부터 청년구직자에게 월 60만원의 취업지원금을 제공하다는 정책은 어떤가?

 

하나의 가정을 통해 우리나라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실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국가적 차원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급격히 증대되지 않는 한,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직장에 취업하기까지의 12개월 동안 60만에 이르는 취업준비생들이 영어공부와 고시공부 등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실적 장벽을 실감하고 장기실업자의 처지에 몰려 20만을 넘는 구직단념자(장기미취업 청년층)가 또 다시 발생할 것이다.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으며 악순환의 고리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사회복지제도(60만원의 실업부조)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1:1 맞춤형 직업능력개발)을 결합하여 국가경제에서 필요한 산업에 조기 취업을 유도한다면 오늘의 현실보다는 훨씬 괜찮은 상황이지 않을까?

 

 

덴마크의 고용지원센터, 영국의 NEW DEAL프로그램, 벨기에의 Rosetta Plan, 이제는 벤치마킹을 제대로 시작할 때이다.

 

사실 앞에서 서술한 가정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덴마크 사례를 재구성해 본 것이다.

그리고 덴마크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원스톱 서비스로 구직자에서 편리하게 제공하기 위해 인구 6만여명 당 1개소의 고용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100만여명 당 1개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차이다.

그리고 고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영국의 NEW DEAL프로그램이 대표적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YES(Young Employment Program)가 벤치마킹한 사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NEW DEAL과 YES 프로그램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년간 대상자는 10만여명, 예산은 530억, 전문직업상담사는 3만명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년간 대상자는 3천여명, 예산은 20억, 전문직업상담사는 2,500여명에 불과하다.

여기서 두 가지의 사실이 확인된다. 하나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왔으며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까지 노동부 평가에서도 청년실업정책에서 가장 성공적 사례로 꼽히고 있는 정책도 YES프로그램 등의 고용인프라 확충사업이다) 또 다른 하나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벨기에의 Rosetta Plan의 경우에는 더 큰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청년층을 ‘눈높이가 문제다'란 식의 방치상태에 가까운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으로의 적극적인 유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해외의 청년실업대책에서 볼 수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어떻게 우리나라에 접목시켜 나갈 것인가와 ‘괜찮은 일자리’의 양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가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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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op. 74 "비창" 1악장

TCHAIKOVSKY: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Pathetique" 1st Movement

 


 

 

[작곡자 소개]

 

차이콥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우랄지방의 외딴 시골 캄스코봇킨스크에서 1840년에 태어난 그는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나, 어학쪽에 더욱 재능을 보여 6, 7세에 벌써 독어, 불어를 구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상류계급의 풍조에 따라 법률학교에서 공부한 후 법무성 관리로 근무했으나,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1860년 안톤 루빈시테인이 주재한 음악교실에 입학, 러시아 최초의 음악원으로 개편한 이 교실의 제1기생이 됐다.

 

그 뒤 모스크바 음악원이 설립되자 교관으로 일하다가 철도 경영자 부호의 미망인 폰메크 부인을 알게 돼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부터 교직을 떠나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작품은 1854년 14세 때의 《왈츠》에서 시작하여 1893년에 완성된 교향곡 제6번 《비창》(작품번호 74)으로 끝났다. 교향곡 6곡, 미완성의 교향곡 1곡, 교향시 1곡, 오페라 11곡, 발레곡 3곡 이외에도 다수의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 및 협주곡 등이 있다.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은 음악회장에서 자주 연주된다. 《피아노 협주곡 1번》,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4·5·6번 등이 유명하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인》,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곡들도 많이 공연되는 작품들이다. 이 외에도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스페이드의 여왕》도 서양의 오페라 극장에서 유명한 작품들이다. 감정에 섬세하게 말하는 그의 음악적 성향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 성향과 매우 가깝다.

 

1893년 11월 6일 콜레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향년 53세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총결산이랄 수 있는 《비창》교향곡을 자신의 지휘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하고 1주일 후였다.[출처 : 위키백과]

 

[앨범소개]

 

□ 지휘

-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udio Abbado

 

□ 오케스트라

- 시카고 심포니 Chicago Symphony Orchestra

 

□ 작곡 연도

- 1893년 2월 17일 착수, 1893년 8월 25일 완성

 

□ 작곡 장소

- Klin

 

□ 가사/대본/원작

유르겐슨 출판사. 이 교향곡은 인간의 부정적인 정서를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했다. 따라서 그 부정적 감정의 근원이 모호하기 때문에 많은 궁금증이 일어나는 곡이다.

 

□ 헌정, 계기

조카인 Vladimir Davydov 에게 헌정됨. 초연 후 동생인 모데스트(Modest Ilyich Tchaikovsky)와의 논의중에서 착상되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 표제를 붙이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출판사가 그대로 출판하면서 "비창"이란 표제를 붙이게 되었다.

 

□ 초연 연도

1893년 10월 16일

 

□ 초연 장소

St. Petersburg

 

□ 초연자

작곡자 지휘

 

□ 악기 편성/성악가/등장인물

플루트 3(제3은 피콜로 겸함),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큰북, 심벌즈, 탐탐, 현5부

 

□ 악장 구성

 

- 1악장 Adagio - Allegro non troppo, B 단조 4/4 박자. 소나타 형식. 서주 : 1-18 마디, 제1 주제 : 19-88 마디, 제2 주제 : 89-160 마디, 전개부 : 161-304 마디, 재현부 : 305-334 마디, 코다 : 335-354 마디로 구성됨. 바순의 낮은 음으로 시작된다. 주부의 제1 주제는 서주의 주선율을 변화시킨 현이 담당한다. 포르티시모의 전개부를 거쳐 재현부로 들어간다. 최강주의 제1 주제가 연주된 뒤에 안단테의 제2 주제가 진행된다. 점차 낮은 음으로 진행되면서 종결된다.

 

 

- 2악장 Allegro con grazia, D 장조 5/4 박자. 3부 형식. 5/4 박자라고 하는 복합 박자에 의한 왈츠. 슬라브의 음악에 잘 볼 수 있는 드문 박자. 중간부는 종악장의 피나레와 같은 주제가 나타난다.

 

 

- 3악장 Allegro molto vivace, G 장조 4/4 박자. 스케르초와 행진곡을 합한 전개부 없는 소나타 형식. 스케르초적인 악상중에 행진곡이 나타난다. A-B-A-B 의 구조임.

 

 

- 4악장 Finale : Adagio lamentoso, B 단조 3/4 박자. 소나타적인 구성을 가지는 복합 3부 형식. 현으로 시작되는 주부의 주제가 포르티시모와 피아니시모로 변화되면서 반복된다. 그후 트롬본 3개와 튜바의 4중음으로 이어지면 곡은 서서히 안단테로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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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 flat장조 op. 73 "황제"  3악장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 flat major op. 73 "Emperor" 3rd Movement

 

 


 

 

 

[지휘자 소개]

칼 아우구스트 레오폴트 뵘

(Karl August Leopold Böhm)

 

□ 출생 1894년 8월 28일 오스트리아 그라츠

 

□ 사망 1981년 8월 14일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 국적 오스트리아

 

칼 아우구스트 레오폴트 뵘(Karl August Leopold Böhm:1894년 8월 28일 – 1981년 8월 14일)는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이다.

 

□ 생애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태어났다. 원래 법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중에 그라츠 콘서바토리에서 음악을 공부하였다. 1921년 칼 무크의 추천으로 브루노 발터는 뮌헨의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 기용했다. 그 후 다름슈타트와 함부르크에서 활동하였고 1943년 빈 주립 오페라에 음악감독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주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활동이 두드러졌으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에서도 활동하였다. 말년에는 런던 교향악단의 회장 겸 객원 지휘자로도 활동하였다.

 

특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친밀한 관계였고 그의 주요 오페라 대부분을 공연하기도 했다. 바이로이트 음악제의 바그너 공연도 유명하며 빈 필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을 지휘해 남긴 관현악 작품들의 녹음도 유명하다.

 

뵘은 꼼꼼한 리듬을 바탕으로 한 해석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오페라와 모차르트의 교향곡, 그리고 1960년대에 베를린 필과 도이체 그라모폰에 남긴 일련의 음반들이 유명하다. 뵘의 열정적인 바그너 해석도 팬들을 모으고 있으며 브람스, 브루크너, 슈베르트 교향곡들의 해석도 뛰어나다. 1971년부터 빈 필과 남긴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은 전설적인 녹음이지만, 도이체 그라모폰 본사에서는 CD 전집으로 재발매하지 않고 있다(프랑스 지사의 더블 시리즈로는 발매됨).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와 룰루 같은 현대 오페라들에서도 명연을 남기고 있다.

 

그는 많은 상을 받았는데 1964년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음악 총감독(Generalmusikdirektor) 칭호를 수여 받았다. 90세에는 카라얀으로부터 시계를 선물받기도 했으며 빈 필의 명예 지휘자 칭호도 받았다.

 

뵘은 잘츠부르크에서 죽었다. 아들로 배우 칼 하인츠 뵘이 있다.

 

[연주자 소개] 출처: 브리태니커

에밀 길렐스 [Gilels, Emil Grigoryevich]

 

1916. 10. 19(구력 10. 6) 러시아 우크라이나 오데사~1985. 10. 14 모스크바.

소련의 피아니스트.

뛰어난 기교와 음조절 능력, 절제된 연주로 찬사를 들었다.

 

6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3세 되던 1929년 처음으로 공식연주회를 가졌다. 1933년 제1회 소비에트 음악 연맹 콘테스트에서 최고상을 차지했다. 1935년 오데사 음악원을 졸업한 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서 하인리히 노이하우스에게 배웠다. 1938년 브뤼셀의 이자이 국제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했고, 또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을 떠나 해외공연을 했는데, 뉴욕 시(1955)와 런던(1959)의 첫 공연에서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특히 베토벤·슈만·브람스의 작품을 주로 연주했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벨라 바르토크, 소련 작곡가들의 작품도 연주했다.

 

 

 

 

[작품해설] 출처 : http://www.goclassic.co.kr/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 flat장조 op. 73 "황제" 

 

□ 작곡 연도: 1808년 착수~1809년 완성

 

□ 작곡 장소: Wien

 

□ 출판/판본: 1811년

 

□ 헌정, 계기

 

-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됨.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서 새롭게 시도한 부분을 다시 대담하게 발전시킴. 1악장 첫부분에 피아노 카덴차를 둠. 2, 3악장은 중단없이 긴밀하게 연결시킴. 피아노가 3악장의 주제를 암시하고 이는 통일성과 대비성이 뛰어남.

 

□ 초연 연도: 1811년 11월 28일

 

□ 초연 장소: 게반트하우스, 라이프치히

 

□ 초연자: Johan Friedrich Schneider 독주, Leipzig Gewandhaus Orchestra

 

□ 악기 편성/성악가/등장인물

 

-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 악장 구성

 

- 1악장 Allegro, E flat장조, 4/4박자, 협주곡풍 소나타 형식. 관현악에 이어 피아노가 카덴차를 연주함. 관현악에 의해 제시부가 시작됨. 제1 주제는 바이올린이 제시함. 독주자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는 카덴차를 없앰. 제2 주제 역시 바이올린이 제시함. 발전부는 제1 주제를 주로 사용하며 제2 주제는 독주 피아노로 연주함.

 

- 2악장 Adagio un poco mosso, B장조,4/4박자,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

 

- 3악장 Rondo: Allegro ma non troppo, E flat장조, 6/8박자. 2악장 마지막에서 암시된 주요주제가 완전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냄. 관현악이 반복한 후 피아노로 부주제를 연주함. 주요주제가 피아노로 재현되고 관현악이 이를 반복 연주함. 코다는 주요주제를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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